EP.159 제22장. 여름이니까! (7) 사람 마음이 참 웃기는 게, 보통 ‘젖는다’라고 하면 불쾌한 생각만 들지 않던가. 특히 이런 한여름에는 땀에 젖는 게 제일 먼저 떠오르고, 그 다음으로 떠오르는 게 불쾌한 냄새와 미묘한 끈적거림이다. 에어컨 틀어두지 않은 곳에서는 어딜 만져도 다 손에 끈적끈적 달라붙는 것만 같아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다른 사람이랑 닿기만 해도 짜증이 치솟고 폭발할 것 같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붙어있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면. 특히, 내가 평소에 너무나도 좋아하는 애들이라면 기분이 좀 달라진다. “루아야, 이쪽, 이쪽.” 속옷이나 다름없는 차림으로—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평소 입는 속옷보다 더 천의 면적이 적은 차림으로, 소이가 달라붙는다. 그렇다. 진짜 아무렇지도 않게 달라붙어서는, 내 옆에서 허리에 자연스럽게 손을 얹어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는 것이다. ‘끌어안는 건 안 된다’라는 미묘한 조건을 잘 아는 소이와 채이는, 어느 순간부터 내게 달라붙는 패턴이 여러모로 교묘해지기 시작했다. 끌어안는 게 안되면 달라붙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느낌으로. 처음에는 팔을 끌어안고, 그다음에는 가슴에 얼굴을 묻고. 안는 게 안되면 안기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진짜 이렇게 단순할 수도 있나 싶으면서도 동시에 또 이상하게 효과적인 방법으로 들러붙더니. 나를 벽이나 소파에 붙이고 몸도 붙이면 안기는 건 아닌데 또 미묘하게 사람 품에 쏙 들어간 기분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기도 하고. 이렇게, 옆에 붙어서 허리에 손을 올리는 정도면 또 꽉 끌어안기는 건 아니니까 두려움이 차오르지는 않는다. 그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섬세하고, 또— 또, 또또또. 아. 뇌가 안 돌아간다. 왜냐하면, 옆에 붙어있기 때문이다. 소이가. 우리는 일단, 잘 때는 옷은 다 입는다. 안에는 속옷이 없는 경우가 많기는 한데, 그래도 파자마는 사람의 피부를 거의 다 가리는 옷이 아니던가. 그런데 수영복은 안 그러니까, 응. 어떤 의미에서는 아래쪽에 속옷이 없기도 하고. 그야 속옷이랑 똑같은 면적이라. 그래서 허리가 닿는다. 가슴도 앞이 가려졌을 뿐이지 옆이 다 가려진 건 또 아니라서, 가슴끼리도 닿아버린다. 게다가 우리 둘 다 물에 푹 젖어서는 미끈거리고. 찰칵. 소이가 방수팩에 넣어온 카메라가 우리 둘의 모습을 촬영했다. 더 예뻐 보이려고 카메라를 한껏 치켜들어서, 우리 둘 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꼴로. 당연히, 그, 가슴이 엄청나게 강조되어 보인다. 하긴 아래에서 찍으면 또 아래에서 찍은 대로 강조되어 보이긴 하겠지만. “예쁘게 찍혔네!” 소이가 한껏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표정이 눈부시다. “흐헷!?” 하지만 거기에 대답에 제대로 돌아오지는 못했다. 뒤에서 나를 확 덮치는 애가 있어서. 이번에도 공격 대상은 허리다. 정확히는 그보다 조금 위. 가슴 바로 아래. 갈비뼈쯤. 그 양쪽을 두 손으로 찰싹 잡아서. 뒤에는 뜨겁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느낌이 확 들어서. “채채채채채채, 채이야!?” “으응? 왜?” 채이가 내 어깨 위에 자기 턱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당연히 채이 몸이 내 몸에 더 확 밀착되어서. 이래도 되나? 이 정도인가? 보통 이런 건 하렘물에서 히로인들 사이에 수상할 만큼 사이좋다는 설정으로 그렇고 그런 일러스트 한 장 뽑을 목적으로 넣는 그런 장면이 아닌가?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이거 하렘물 맞기는 해. 정작 하렘물 주인공은 저쪽에 떨어져 있긴 했지만. 튜브톱 비키니를 입고. 새하얀 피부를 반짝반짝 빛내면서. 쟤를 아직도 하렘물 주인공으로 보는 게 맞나? 그냥 히로인이잖아? 꼬실 상대가 없을 뿐이지, 배경설정부터 외모까지 그냥 히로인이라고 생각해도 될법한 그런 모습이 아닌가? 진우는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응, 하는 듯 고개를 확 끄덕인 뒤 내 쪽으로 힘차게 뛰어왔다. 음, 뛰어오는 자세를 보니까 확 깨네. 그게, 바다니까. 물살을 헤치면서 뛰는 건 아주 힘든 일이다. 조금 편하게 뛰려고 하면 자기도 모르게 물 위쪽으로 다리를 힘차게 뻗게 되고. 그러다 보면 좀, 개구리 같은 자세가 되어버린달까. “으앗!?” 저 봐, 지척까지 뛰어와서는 발을 또 헛디딘다. 물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무겁고 단단한 것이라, 당연히 한쪽 다리라도 힘이 풀리면 그럴 수밖에— 어라. 그런데, 지척 아니었나? 바로 앞에서 넘어지면, 진우 얼굴은. 짭! 하고, 주변의 우리랑은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단숨에 이쪽을 쳐다볼 정도의 굉장한 소리가 났다. 그야, 내 가슴살은 비교적 면적이 작은 천 조각이 겨우 가린 수준이었으니까. 볼살과 부딪치면 그런 소리를 낼 수밖에. 그것도 물에 푹 젖어있었으니 그만큼 더 찰진 소리가 날 수밖에 없었으리라. “으, 으—!?” 그리고 자기 얼굴을 가득 메운 것이 무엇인지 조금 뒤늦게 깨달은 진우가 뒤로 몸을 확 빼다가. “으앗!?” 이번에는 뒤로 발랑 넘어져서, 풍덩. 바다에 꼬르륵 빠져버린다. 음, 뭐랄까. 히로인 같다고 하자마자 바로 하렘물 주인공 같은 행동을 해버릴 줄은 몰랐는데. 그나저나 이번이 두 번째인가? 다른 히로인들한테 그러지 않은 건 좋게 봐줄 만하다만, 그건 그렇다 쳐도 얘는 왜 매번 나한테만 이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초반에는 히로인도 아니고 그냥 쓰레기에 가까운 역할이었는데 말이지. “어, 진우야?”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다가, 진우가 몇 초 정도 물속에서 나오지 않는 걸 뒤늦게 깨닫고, 우리 세 사람은 허둥지둥 물속에서 기절한 진우를 끄집어 올렸다. * 그렇게 숫기 없는? 아니면 어딘가 영악한? 아무튼 그 성향을 아직도 잘 모르겠는 진우까지도 모여서 노는 와중에도, 유난히 존재감이 없는 애가 한 명. 그래. 바로 현지였다. 원작에서의 현지는 존재감이 다른 의미로 높은 애였다. 왜, 주인공인 남진우가 본의 아니게 변태 짓을 할 때마다 어디선가 튀어나와서는 “이 변태 놈이!”라면서 일갈하는 풍기위원이었으니까. 그러면서 정작 자기가 튀어나온 곳이 또 절묘한 곳이라서 남진우의 이어지는 변태 짓에 당하고, 얼굴 새빨갛게 물들이면서 또 소리 지르고 하는 그런 위치.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음. 뭐라고 해야 하나, 나와 소이와 채이 때문에 상식이 무너져 버렸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매일매일 얼굴을 끌어안아 주니 자기 기준에 조금 자신감이 떨어졌다고 해야 할지. 아무래도 적극적으로 파렴치하다고 외치면 진짜 매일매일 쉬지 않고 외치게 되어야 할 위치에 있다보니, 원작에 비해서 독기가 쭉 빠져버렸다. “음.” 그래서인지, 지금도 저 멀리 떨어져서는 여전히 어쩔 줄 모른달까. 우리 중에서는 그나마 제일 얌전한 수영복이면서도 몸을 이리저리 가리지 않나, 주변 사람들을 힐끔거리질 않나. 자기가 여기 있어도 괜찮을지 아닐지 잘 모르는 듯한 표정이라. ……그건 뭐 그렇다 쳐도. 그렇게 혼자만 자꾸 떨어져 있으니까, 주변에서 시선이 모이잖아. 전생에, 그러니까 지극히 평범하고 특이할 것도 없는 대한민국에서 살던 나는 길 가던 누가 일부러 말을 걸 정도로 잘생긴 남자도 아니었고, 여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의 세상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아는 것으로는, 그렇게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은 지들끼리 알아서 잘 지지고 볶는다는 것이다. 특히 신기한 건 혼자 어디 놀러 갔다가도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말 트고 친구가 되어 아예 연인까지 가버리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게 좀 지나치게 나간 건지도 모르겠는데. ……현지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들 말이다. 대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모를 사람들이, 혼자서 어쩔 줄 모르는 현지를 힐끔거리는 게 보인다. 그게 막 나쁘다는 것까지는 아니고. 그냥 이렇게 예쁘고 몸매도 좋은 애가 혼자서 외로워하고 있으니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뭔가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다. 이미 여러 번 말했듯, 나는 욕심 많고 이기적인 인간이라. 내 주변에 있는 여자애들한테 남자친구 생긴다는 게, 좀 기분이 나쁘다. 먼저 고백해서 사귈 것도 아니면서. 그러니까, 현지를 그냥 둘 생각은 없었다. “혀, 현지야!” 나는 현지한테 외치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현지 눈이 동그랗게 떠지며 나를 보았다. 그런 현지를 향해서 힘차게 뛰었다. 가서 손이라도 잡아서 우리 쪽에 데려다 놓을 생각이었는데. “흐햣!?” 푹, 하고. 물속에서 발이 한번 빠졌다. 바닷물 속에 제멋대로 쌓여있던 모래더미가 무너진건지. 아니면 파도가 휩쓸고 나가면서 하필이면 내 발아래의 모래를 무너뜨려 버린 건지. 아무튼, 하필 나는 현지 거의 바로 앞에서 중심을 잃어버렸다. “아.” 뭐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기도 전에. 짭! 하고, 양 볼이 아팠다. 그리고 이어서 느껴지는 건,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 따끈따끈한, 기분 좋은 감각. 시선을 위로 들어보니, 얼굴이 새빨갛게 되는 것조차 잊어버린 듯 멍한 현지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이었다. “……!?” 황급히 뒤로 빠지려다가, 이번에 또 발을 헛디뎌서. 첨벙, 하고 물속으로. “루아야!?” 네 명의 친구들이 내 이름을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물속으로 꼬르륵 가라앉아 버리고 말았다.